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쳐도 늑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발밑에서 일어난 바람이 몸을 앞으로 밀어 줄 때마다 숲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 예전 같으면 루루에게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자랑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그 말을 들어 줄 친구가 없었다.
검게 물든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늑구는 흙을 길게 긁으며 멈춰 섰다. 머리 위로 겹겹이 뒤틀린 어둠이 떠 있었다. 그라코스에게 들은 말 한마디를 붙들고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마주하자 다리가 떨려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늑구는 도망치려는 뒷발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어둠 한가운데 갈라진 보랏빛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늑구힘을 줘. 더 쎄지고 싶어.
어둠이 하찮은 생명체는 뭐지?
대답은 늑구에게 건네는 말조차 아닌 것 같았다. 어둠은 앞길을 가로막은 작은 돌을 내려다보듯 늑구를 훑었다. 늑구가 한 번 더 입을 열기도 전에, 주위의 검은 기운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늑구: 힘을 줘. 더 쎄지고 싶어.
어둠: 이 하찮은 생명체는 뭐지?

어둠이 귀찮다는 듯 몸을 기울였다. 위로 치솟은 검은 기운이 거대한 칼날처럼 떨어졌다. 늑구는 생각할 틈도 없이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발끝에서 터진 바람이 그를 땅 위로 쏘아 보낸 순간, 방금 서 있던 자리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바위가 산산이 부서지고 굵은 나무뿌리까지 뽑혀 나왔다. 갈라진 땅에서 흙먼지가 솟구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늑구는 날아오는 파편 사이로 몸을 낮춘 채 달리다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멈췄다. 숨이 턱에 걸렸지만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어둠의 움직임이 멎었다. 무심히 내려다보던 보랏빛이 이번에는 늑구가 남긴 바람의 궤적을 천천히 따라갔다.
어둠오? 쓸만한 곳이 있겠군.
늑구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 어둠을 바라봤다. 그 말이 자신에게 어떤 뜻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어둠: 오? 쓸만한 곳이 있겠군.

그란토가 뚫어 준 터널 안에는 아직 새로 부서진 돌 냄새가 남아 있었다. 준호 일행은 루비의 꼬리에서 번지는 불빛을 따라 걸었다. 돌벽에는 거대한 발톱이 지나간 흔적이 길게 이어졌고, 발소리는 앞쪽의 어둠으로 흘러갔다가 몇 번이고 되돌아왔다.
그 길이 열린 틈으로 다른 것도 들어오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맞닿은 곳을 따라 가느다란 검은 연기가 스며들었다. 불빛이 닿으면 옅어졌다가, 일행이 지나가면 다시 돌 틈을 채웠다.
귀를 쫑긋 세운 루비가 걸음을 멈췄다. 바위 뒤로 작은 쥐 한 마리가 사라졌고, 그 위에서는 박쥐 같은 그림자가 날개를 접었다. 단순히 어두워서 검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몸 가장자리가 주위의 어둠과 함께 일렁였다.
루비준호야, 저기 봐. 저 쥐랑 박쥐… 좀 이상해.
준호어디? 바위 뒤에 있는 애들?
준호가 몸을 낮춰 들여다보자 그림자들은 더 깊은 틈으로 물러났다. 루비는 보이지 않게 된 자리를 한동안 노려봤다.
루비: 준호야, 저기 봐. 저 쥐랑 박쥐… 좀 이상해.
준호: 어디? 바위 뒤에 있는 애들?

루비는 앞서 가던 일행을 불러 세웠다. 몸에 검은 기운이 붙어 있었고, 그냥 지나가는 작은 동물 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민정이 벽 쪽을 살폈지만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민정그렇게 작은 쥐랑 박쥐한테도 속성이 있다고?
루비모르겠어. 그래도 평범한 애들은 아니었어.
찌루나도 그런 건 본 적이 없는데… 불빛 때문에 그렇게 보인 거 아닐까?
지금껏 그렇게 작은 생명체가 속성의 힘을 쓰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남정은 바위에 길게 늘어진 자기 그림자를 가리켰고, 다른 펫들도 주위를 둘러본 뒤 고개를 갸웃했다. 루비를 놀리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루비도 확실한 증거를 댈 수는 없었다. 직접 본 것은 검은 몸의 가장자리와 잠깐 마주친 눈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분명하게 느껴졌던 이상함을 말로 꺼낼수록 오히려 설명이 꼬였다. 결국 입을 다물고 다시 앞장섰지만, 귀는 계속 뒤쪽을 향해 있었다.
민정: 그렇게 작은 쥐랑 박쥐한테도 속성이 있다고?
루비: 모르겠어. 그래도 평범한 애들은 아니었어.
찌루: 불빛 때문에 그렇게 보인 거 아닐까?

얼마나 걸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비슷한 돌벽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남정의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민정도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고쳐 메다 말고 잠깐 쉬어 가자고 했다. 일행은 벽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모여 앉았다.
준호는 루비가 아까부터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피곤해서 예민해진 줄로만 생각했다. 자리를 잡은 뒤 루비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루비는 마지막으로 통로를 살펴보고는 찌루 곁에 몸을 말았다. 이야기 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돌 틈에는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지자 천장 틈에서 날개 하나가 조용히 펼쳐졌다. 어둠에 묻힌 밤브레의 날개 윤곽 아래로 모치르의 둥근 귀가 움직였다. 둘은 다른 일행을 지나 잠든 루비에게 다가갔다. 모치르가 앞발을 들고 밤브레가 몸을 낮추는 순간까지도 루비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때, 몸속 깊은 곳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외침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목소리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불길도 섬광도 없었다. 루비를 향해 덮쳐드는 두 그림자와, 잠을 가르며 파고드는 목소리만 어두운 통로를 채웠다.
알 수 없는 목소리: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

루비는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렸는지 찾아볼 틈도 없이 가슴 안쪽이 뜨거워지더니, 앞발 주위에서 터진 불길이 통로를 환하게 밝혔다.
방금까지 윤곽만 보이던 두 습격자의 모습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모치르는 달려들던 몸을 급하게 틀며 눈을 크게 떴고, 밤브레는 펼친 날개를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검은 털과 날개 안쪽까지 환하게 비추는 불길은 둘이 예상했던 작은 꼬리 불꽃과 전혀 달랐다.
모치르뭐야?!
밤브레피해!
루비도 자신을 둘러싼 불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일부러 기술을 쓴 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불은 이미 자신을 덮치려던 두 존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모치르: 뭐야?!
밤브레: 피해!

민정은 놀라 깬 남정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모아와 포리, 두리와 시루도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찌루가 눈을 비비다가 불길 너머를 보고 굳었다. 조금 전까지 작은 그림자처럼 보였던 쥐와 박쥐가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찌루루비가 말한 게… 저 애들이었어?
모아도망간다!
모치르는 더 다가오지 못하고 발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밤브레의 날개 끝에 불꽃이 스치자 둘은 동시에 몸을 돌렸다. 모치르는 좁은 바위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밤브레는 천장 가까이 솟구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행은 이제 아무도 평범한 동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두 존재가 달아난 자리에도 검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루비가 꼬리를 낮추자 불길이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벽을 타고 번지는 연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찌루: 루비가 말한 게… 저 애들이었어?
모아: 도망간다!

준호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바닥 가까이 머물던 연기가 어느새 무릎 높이의 틈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군이 길을 열어 주며 감수해야 한다고 했던 위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둠은 이미 터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준호여기서 더 쉬면 안 되겠어. 다들 짐 챙겨.
일행은 서둘러 통로로 나섰다. 이번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루비가 살피는 쪽을 함께 바라봤다. 뒤에서 날개 소리라도 날까 봐 귀를 기울이던 루비가 볼을 부풀렸다.
루비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무도 안 믿었으면서.
민정미안해, 루비야. 네 말을 더 잘 들었어야 했어.
준호나도 미안해. 또 뭔가 보이면 바로 말해 줘. 이번엔 같이 확인할게.
찌루도 루비 옆으로 바짝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는 아직 서운한 얼굴이었지만, 혼자 뒤를 지켜볼 필요는 없어졌다. 한참 뒤 통로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불꽃이 한쪽으로 눕자 일행은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루비: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무도 안 믿었으면서.
민정: 미안해, 루비야. 네 말을 더 잘 들었어야 했어.
준호: 또 뭔가 보이면 바로 말해 줘. 이번엔 같이 확인할게.

터널 밖으로 나오자 막혀 있던 숨이 트였다. 산 아래로 전기 마을의 지붕들이 이어졌고, 길 양옆에는 가지마다 빛나는 열매를 단 나무들이 서 있었다. 일행은 드디어 도착했다며 걸음을 늦췄다. 그런데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한 나무에서는 노란빛이 환하게 쏟아졌지만, 바로 옆 나무에는 열매가 한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머지 가지에는 열매를 따 간 빈 꼭지가 드러나 있었고, 남은 열매의 빛만으로는 나무 아래의 그늘을 몰아내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도 없었다. 건너편 길과 광장까지 둘러보니 그렇게 빛이 약해진 나무가 거의 절반이었다.
남정누나, 저쪽 나무들은 왜 빛이 거의 안 나?
민정그러게. 전기 마을은 항상 눈부실 정도라던데…
찌루는 환한 나무 아래로 갔다가 어두운 나무 앞에도 서 보았다. 두 곳의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듯 가시를 조금 세웠다. 준호는 마을 사람을 찾아 사정을 물어보기로 했다.
남정: 누나, 저쪽 나무들은 왜 빛이 거의 안 나?
민정: 그러게. 전기 마을은 항상 눈부실 정도라던데…

불이 남아 있는 나무 아래에서 노란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전기 열매가 그 작은 얼굴과 돌길 한쪽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옆 나무부터는 열매가 사라져 가지가 텅 비었고, 골목은 멀어질수록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둥근 눈 옆의 푸른 무늬를 발견한 민정은 걸음을 멈췄다. 말린 꼬리 끝에서 작은 전기가 튀자, 그녀의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민정와, 말로만 듣던 신비한 고양이다!
민정이 고양이를 가리키며 허리를 조금 숙였다. 고양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를 올려다봤지만, 빈 가지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표정이 금세 무거워졌다. 일행이 만난 신고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나눌 여유보다 먼저 전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민정: 와, 말로만 듣던 신비한 고양이다!

준호는 밝은 나무 아래에 서서 어두워진 골목을 둘러봤다. 조금 전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만 해도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빛을 잃은 나무들은 가까이에서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발치의 신고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준호전기 마을은 24시간 밝다고 들었는데, 듣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네?
신고요즘 처음 보는 녀석이 열매를 따 가고 있어.
누군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달려가면 그 녀석은 벌써 다른 나무에 있다고 했다. 눈앞에서 발견해도 붙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길이 늘었고, 어제까지 환하던 나무도 오늘은 빈 가지만 남았다.
준호는 열매가 달렸던 자리를 살펴봤다. 빛이 저절로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 마을을 밝히는 열매를 하나씩 가져가고 있었다.
준호: 전기 마을은 24시간 밝다고 들었는데, 듣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네?
신고: 요즘 처음 보는 녀석이 열매를 따 가고 있어.

신고는 마을 너머 바위 능선이 이어지는 쪽을 바라봤다.
신고그 녀석은 지르렉스가 사는 곳에 자주 나타나.
이야기는 앞서 그 서식지에서 벌어졌던 광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거친 바위 사이에 지르렉스가 버티고 있었다. 푸른 등판과 꼬리 끝이 선명하게 드러난 그 뒤로, 조금 큰 늑대 같은 형체가 멀리 지나갔다. 뾰족한 귀와 긴 주둥이, 달리는 네 다리의 윤곽은 보였지만 얼굴과 털빛은 흐릿한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지르렉스 곁에 나타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 이름을 들은 준호의 손이 멈췄다. 루루를 지키지 못했다며 울던 늑구의 목소리가 떠올랐고, 루비도 귀를 세웠다. 하지만 그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만으로 열매 도둑의 정체나 목적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준호거기로 열매를 가져가는 거야?
신고그건 아직 몰라. 그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는 것만 확인했어.
신고는 확실히 아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았다. 준호도 그 흐릿한 형체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대신, 먼저 고양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로 했다.
신고: 그 녀석은 지르렉스가 사는 곳에 자주 나타나.

신고는 준호 앞에 다가와 앞발 하나를 들었다. 열매를 빼앗긴 나무를 설명할 때보다 목소리가 한층 간절해졌다.
신고그 녀석이 열매를 더 따 가지 못하게 막아 줘.
혼자 쫓아가서는 번번이 놓쳤다고 했다. 고양이는 준호의 대답을 기다리며 올려다봤다. 준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두르간을 찾으러 여기까지 온 두리와, 산을 뚫어 길을 열어 준 단군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신고: 그 녀석이 열매를 더 따 가지 못하게 막아 줘.

준호는 신고와 눈높이를 조금 맞추려고 몸을 낮췄다. 다급한 부탁을 거절하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두리의 아빠를 찾는 일을 뒤로 미룰 수도 없었다.
준호미안해. 우리는 두르간을 찾으려면 어둠을 찾아가야 해.
단군조차 두르간에게서 어둠의 기운만 느꼈을 뿐, 어디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준호는 전기 마을에서 단서를 얻으면 곧바로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신고는 그 설명을 듣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준호가 돌아서기 전에 남아 있는 전기 나무를 가리켰다.
준호: 미안해. 우리는 두르간을 찾으려면 어둠을 찾아가야 해.

신고의 앞발 끝을 따라 준호의 시선이 움직였다. 아직 열매가 남은 나뭇가지 사이로 가느다란 전기가 이어졌고, 그 아래 돌길은 어두운 골목과 뚜렷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신고전기 나무의 전기가 어둠을 막고 있어.
신고전기가 끊기면 이 마을도 어둠에게 지배당할 거야.
신고는 자신들이 지키려는 것이 단순히 밤길을 밝히는 불빛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열매가 사라질수록 마을을 둘러싼 전기의 힘도 약해지고 있었다. 준호는 터널을 따라 스며들던 검은 연기를 떠올리며 다시 빈 가지를 바라봤다.
신고: 전기 나무의 전기가 어둠을 막고 있어.
신고: 전기가 끊기면 이 마을도 어둠에게 지배당할 거야.

신고는 준호가 두르간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마을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기 마을이 버티는 동안에는 어둠도 마음대로 힘을 넓힐 수 없지만, 이곳마저 무너지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신고전기 마을이 무너지면 다른 마을도 위험해져.
신고그러니까 먼저 전기 열매를 지켜야 해.
이미 공격받은 마을들이 떠올랐다. 다시 피신할 곳도 없이 어둠이 번지는 동안 두르간을 찾으러 다닌다면, 돌아갈 곳까지 잃을 수 있었다. 준호는 두르간을 찾는 일과 마을을 지키는 일이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고민하던 그의 시선이 신고에게 돌아왔다.
신고: 전기 마을이 무너지면 다른 마을도 위험해져.
신고: 그러니까 먼저 전기 열매를 지켜야 해.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을 찾아가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더 많은 마을이 위험해지기 전에, 이곳에서부터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었다.
준호알겠어. 우리가 도와줄게.
그제야 신고가 작은 검은 수신기를 꺼내 돌턱 위에 올렸다. 전기 열매 몇 개에 위치 추적기를 숨겨 두었고, 열매를 가져간 녀석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이 기계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화면의 점은 잠깐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신고고마워. 이걸로 그 녀석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준호가 내민 손 위로 수신기가 건네졌다. 위치를 알아도 혼자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는 신고의 말이 이제 실감 났다. 그는 화면과 어두운 골목을 번갈아 본 뒤, 기계를 놓치지 않도록 손에 단단히 쥐었다.
준호: 알겠어. 우리가 도와줄게.
신고: 고마워. 이걸로 그 녀석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