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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6 · 펫샵 너머 숲길

6화. 깨어난 불꽃

1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무너진 펫샵을 나온 민정은 길가의 진흙부터 살폈다. 주인이 가리킨 방향에는 크고 작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겹쳐 있었다. 나무뿌리 사이로 이어진 둥근 자국을 따라가던 남정이 누나의 소매를 잡았다.

남정누나, 발자국이 이쪽으로 이어져.

포리가 먼저 풀숲을 비집고 들어갔고, 두리와 시루도 그 뒤를 따랐다. 좁던 길이 돌무더기 옆에서 조금 넓어지자, 쓰러진 나무 너머로 검은 곰 한 마리와 황갈색 퓨마 한 마리가 보였다. 주인이 말한 꼬마와 뾰롱이였다.

민정이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기도 전에 꼬마의 표정이 굳었다. 뾰롱이는 남매와 세 펫을 번갈아 훑더니 몸을 낮췄다. 펫샵에서 도망쳐 나온 자신들을 뒤쫓는 무리로 보인 모양이었다.

꼬마우릴 잡으러 온 거야?

꼬마: 우릴 잡으러 온 거야?

남정: 누나, 발자국이 이쪽으로 이어져.

2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민정아니야. 우린 생명수를 찾으러 왔어.

하지만 꼬마는 생명수라는 말에 오히려 이를 드러냈다. 가게에 있던 물건을 찾는다는 말이, 주인이 보낸 사냥꾼이라는 의심을 굳힌 것이다. 뾰롱이가 먼저 나무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뾰롱이다시 잡혀갈 줄 알아?

민정이 남정을 뒤로 당기는 순간 포리가 둘 앞에 뛰어들었다. 뾰롱이의 발톱이 내려오는 길을 가지로 막자 나뭇조각이 얼굴 옆으로 튀었다. 다른 쪽에서 달려든 꼬마는 두리가 굴려 보낸 돌에 진로가 막혔지만, 곧 돌 위를 짚고 몸을 넘겼다.

시루까지 두리 옆에 붙어 서자 남매 앞에 작은 방어선이 생겼다. 말을 주고받을 틈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민정: 아니야. 우린 생명수를 찾으러 왔어.

뾰롱이: 다시 잡혀갈 줄 알아?

3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포리가 가지를 뻗어 뾰롱이의 발을 묶으려 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이 먼저 가지의 마디를 끊었다. 두리가 던진 돌덩이는 꼬마의 어깨를 스치지도 못했다. 꼬마는 돌이 지나갈 때까지 몸을 숙였다가, 두리가 다음 돌을 들어 올리기 전에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다.

시루가 둘 사이로 얼음 공격을 쏘아 보냈다. 뾰롱이는 옆으로 뛰어 피했고 꼬마는 얇은 얼음 끝을 발톱으로 깨뜨리며 밀고 들어왔다. 힘을 모아 내보낸 공격들이 너무 쉽게 흩어지는 바람에 세 펫의 호흡이 점점 급해졌다.

포리두리, 옆에!

두리가 몸을 돌리자마자 시루가 빈자리를 메웠다. 셋이라서 겨우 서로의 빈틈을 막을 수 있었지만, 누구도 반격을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다. 뒤에는 민정과 남정이 있었다. 세 펫은 물러날 때마다 남매에게 가까워지는 발톱을 보며 다시 버텼다.

포리: 두리, 옆에!

4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그때 숲길 건너편에서 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생명수가 든 가방을 등에 걸친 세로가 거친 숨을 골랐다. 펫샵을 빠져나올 때 놓쳤던 꼬마와 뾰롱이가 눈앞에 있었다.

꼬마세로! 어디 갔었어?

세로너희가 뒤도 안 보고 달렸잖아!

세로는 투덜거리다가 싸우고 있는 상대들을 봤다. 꼬마가 저쪽에서 자신들을 잡으러 왔다고 말하자, 세로는 더 묻지도 않았다. 가방을 길옆으로 내려놓고 앞발로 땅을 긁자 포리의 발밑으로 모래가 밀려들었다.

둘의 움직임을 쫓기도 버거웠는데 발을 디딜 자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루가 미끄러지는 포리를 붙잡는 사이, 꼬마와 뾰롱이가 다시 달려들었다.

꼬마: 세로! 어디 갔었어?

세로: 너희가 뒤도 안 보고 달렸잖아!

5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세로가 지나간 길을 따라 준호도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훔쳐 간 생명수만 되찾으면 루비와 찌루를 치료할 수 있었다. 앞서 가던 모아가 흙에 찍힌 발굽 자국을 찾아낼 때마다 준호는 품에 안은 두 펫을 고쳐 안고 그쪽으로 향했다.

준호조금만 참아. 생명수를 되찾을게.

루비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다친 다리가 욱신거렸다. 옆에 웅크린 찌루도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준호의 걸음에 맞춰 몸이 작게 흔들리자, 루비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그의 팔에 턱을 묻었다.

루비나… 잠깐만 눈 좀 붙일게.

준호가 낮게 대답하는 소리는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던 햇빛이 눈꺼풀 너머에서 붉게 번지더니, 어느 순간 숲의 냄새도 발걸음 소리도 사라졌다.

루비: 나… 잠깐만 눈 좀 붙일게.

준호: 조금만 참아. 생명수를 되찾을게.

6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루비가 눈을 떴을 때는 사방에 붉은 연무가 떠다니고 있었다. 발밑은 뜨거웠지만 타들어 가지는 않았다. 저 멀리 무엇인가 서 있는 듯했으나, 시선을 모을수록 윤곽이 흐려졌다. 다만 그쪽에서 밀려오는 기운이 너무 커서 루비는 저도 모르게 몸을 낮췄다.

알 수 없는 목소리내 불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느냐?

목소리는 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가도 루비의 가슴 안쪽에서 울렸다. 루비가 뒤를 돌아보자 바로 앞의 불길이 움직였고, 흐릿한 존재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목소리한심한 놈아..

루비누구야? 내 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대답은 없었다. 루비는 겁이 났지만 그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앞발을 한 걸음 내딛고, 빛과 연기 사이로 얼굴이라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알 수 없는 목소리: 내 불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느냐?

알 수 없는 목소리: 한심한 놈아..

7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그 순간 누군가 포리의 이름을 외쳤다. 붉은 연무가 걷히기도 전에 준호의 팔이 루비를 단단히 받쳤고, 눈앞으로 숲의 햇빛이 돌아왔다. 준호가 갑자기 멈춰 선 길 끝에는 민정과 남정이 있었다.

준호민정아! 남정아!

반가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포리는 끊어진 가지 앞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두리와 시루는 서로 등을 맞댄 채 밀려드는 공격을 막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서 세로가 모래를 일으켰다. 꼬마와 뾰롱이는 그 틈을 타 남매 쪽으로 파고들었다.

모아포리!

모아가 생각할 틈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루비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다가 통증에 움찔했다. 방금 들었던 낯선 목소리를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준호: 민정아! 남정아!

모아: 포리!

8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모아가 꼬리를 휘두르자 맑은 물이 솟아 포리와 두리, 시루 앞에 넓은 방패를 만들었다. 날아오던 모래가 물속에 갇혀 가라앉았다. 세로가 짧게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고 모아는 방패를 한 겹 더 밀어 올렸다.

모아내 뒤로 와!

그러나 꼬마와 뾰롱이는 멈추지 않았다. 꼬마가 한쪽을 힘껏 후려치는 순간 뾰롱이가 반대편을 발톱으로 길게 갈랐다. 모아가 빈틈을 메우기도 전에 물줄기가 양옆으로 터져 나왔다.

모아는 다시 물을 끌어모았지만 두 발톱은 늘 그보다 먼저 닿았다. 세로를 쓰러뜨렸던 물도 이 둘 앞에서는 버텨 주지 못했다. 방패 뒤에서 안도하려던 포리가 다시 몸을 낮췄고, 두리와 시루도 젖은 땅을 힘껏 밟으며 버틸 준비를 했다.

모아: 내 뒤로 와!

9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의 품에서 찌루가 꿈틀거렸다. 준호가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찌루는 이미 땅으로 내려와 있었다. 다친 몸을 곧게 세우는 데도 시간이 걸렸는데, 눈은 물방패 너머의 친구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찌루이번엔 내가… 막을게.

찌루가 온몸에 힘을 주었다. 가시 사이에서 시작된 작은 전기 스파크가 머리와 앞발 주변으로 짧게 튀었다. 하지만 공격으로 뻗어 나가지는 못한 채 찌직거리다 꺼졌다. 찌루가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힘을 모아도 결과는 같았다.

찌루어? 전기가 왜 안 나가지?

루비는 찌루의 앞발이 떨리는 것을 보고 다급히 불렀다. 그 소리에 세로도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공격조차 못 하는 찌루를 보자 세로의 입가가 올라갔다.

찌루: 이번엔 내가… 막을게.

찌루: 어? 전기가 왜 안 나가지?

10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세로가 고개를 낮추자 발치의 모래가 두껍게 일어났다. 모래는 땅 위를 빠르게 쓸고 와 찌루의 머리 위로 굽이쳤다. 피하려고 뒷발을 옮겼지만 다친 다리가 늦었다. 쏟아진 모래가 작은 몸을 덮쳤고, 찌루는 그 무게에 옆으로 넘어져 바닥에 눌렸다.

찌루으아악!

준호가 달려들려 했지만 거세게 휘몰아치는 모래가 앞을 가로막았다. 모래가 흘러내린 뒤에야 찌루의 웅크린 몸이 드러났다. 짧게 들썩이던 가시에서 마지막 전기 한 줄기가 꺼졌고, 찌루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루비찌루!

루비의 귀에는 그 외침 뒤로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같이 훈련하자던 목소리, 가족이 되어 주겠다며 이마를 맞대던 찌루가 바로 앞에 쓰러져 있었다. 루비는 준호의 팔에서 내려와, 떨리는 네 발로 땅을 짚었다.

루비: 찌루!

찌루: 으아악!

11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찌루에게 다시 다가가려는 세로를 보자 루비의 가슴 안쪽이 뜨겁게 뒤집혔다. 아픈 다리도, 조금 전 자신의 불을 막아 냈던 모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저 모래가 찌루를 한 번 더 덮치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루비찌루한테서 떨어져!

루비가 입을 열자 가느다란 불꽃 대신 거대한 화염줄기가 터져 나왔다. 세로가 급히 솟구쳐 올린 모래벽이 한순간 붉게 물들었다. 불길은 벽을 통째로 무너뜨리고, 양옆으로 피하려던 꼬마와 뾰롱이까지 휘감았다.

숲길을 덮은 빛에 준호가 팔로 눈을 가렸다. 모아는 친구들을 뒤로 물렸고, 민정은 남정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루비의 작은 몸에서 쏟아지는 불은 모두가 알던 것과 달랐다. 세로조차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피할 곳이 없었다.

루비: 찌루한테서 떨어져!

12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화염이 잦아들자 꼬마와 뾰롱이, 세로가 흙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까지 정신없이 오가던 발톱도 모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루비는 자신이 벌린 일을 바라보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힘을 모으는 방법도, 불을 멈춘 순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목소리그래, 그거야~ 이제야 내 불이 어떤지 아는 것 같군.

루비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나무 뒤를 봐도, 쓰러진 세 펫 쪽을 봐도 말을 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소리는 루비의 몸 안에서 울린 듯했다.

루비누가… 말한 거야?

준호루비, 뭐라고?

준호가 다가오자 루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른 누구도 그 말을 듣지 못한 눈치였다. 찌루 쪽에서 작은 신음이 들려오자, 루비는 혼란을 떨쳐 내지도 못한 채 그쪽으로 달려갔다.

알 수 없는 목소리: 그래, 그거야~

알 수 없는 목소리: 이제야 내 불이 어떤지 아는 것 같군.

루비: 누가… 말한 거야?

13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는 세로 옆에 떨어진 가방을 열었다. 흙투성이가 된 병들 사이에서 마개가 온전한 생명수를 꺼내자 민정과 남정도 곁으로 달려왔다. 먼저 찌루의 머리를 조심스레 받치고, 입가에 생명수를 조금씩 흘려 넣었다.

준호찌루야, 천천히 삼켜. 여기 있어.

가늘던 숨이 차츰 고르게 돌아왔다. 찌루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루비는 그제야 굳어 있던 어깨를 내렸다. 준호는 루비에게도 병을 내밀었고, 남매는 포리와 두리, 시루, 모아를 차례로 돌봤다. 생명수를 마신 펫들은 다친 자리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하나둘 일어섰다.

찌루루비… 너도 괜찮아?

루비응. 그러니까 너도 이제 놀라게 하지 마.

말끝이 조금 떨렸지만 찌루는 못 들은 척 루비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 곁에서 지켜보던 포리도 긴 숨을 내쉬었다. 모두 기운을 되찾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준호는 남은 병을 세어 보았다.

준호: 찌루야, 천천히 삼켜. 여기 있어.

찌루: 루비… 너도 괜찮아?

루비: 응. 그러니까 너도 이제 놀라게 하지 마.

14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꼬마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뾰롱이와 세로도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준호가 남은 생명수를 들고 그쪽으로 향하자 두리가 한 발 앞을 막았다.

두리쟤들한테도 주려고?

준호응. 다쳤잖아. 일단 치료부터 하자.

두리는 찌루를 돌아봤다가 비켜섰다. 민정이 가방을 받아 병을 건넸고, 준호는 꼬마와 뾰롱이, 세로에게도 생명수를 먹였다. 루비와 찌루는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루비는 아직 화가 가시지 않았지만 더 공격하려 하지는 않았다.

세 펫의 호흡이 안정되고 앞발에 힘이 돌아왔다. 맨 먼저 눈을 뜬 꼬마는 자신 앞에 쪼그려 앉은 준호와 비어 가는 병을 번갈아 봤다. 준호가 병을 내려놓기도 전에 꼬마는 그의 손을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두리: 쟤들한테도 주려고?

준호: 응. 다쳤잖아. 일단 치료부터 하자.

15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꼬마는 정신을 차린 뾰롱이를 어깨로 툭 건드렸다. 세로도 급히 일어나 둘 옆으로 붙었다. 고맙다는 말은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세로는 루비를 한 번 노려보다가, 그 눈이 자신을 향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뾰롱이이걸로 끝난 줄 알아? 꼭 복수할 거야!

세로다음엔 안 봐줘!

엄포와 달리 셋의 발은 이미 숲 쪽을 향해 있었다. 세로가 먼저 달리기 시작하자 꼬마와 뾰롱이도 바로 뒤따랐다. 이번에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봤다. 남정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빈 숲길을 바라봤다.

남정치료까지 해 줬는데, 진짜 너무하네.

준호는 굳이 쫓아가지 않고 가방의 끈을 여몄다. 루비는 곁에 선 찌루를 확인한 뒤 자기 앞발을 내려다봤다. 아까의 뜨거움은 사라졌지만, 내 불이라고 말하던 낯선 목소리만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뾰롱이: 이걸로 끝난 줄 알아? 꼭 복수할 거야!

세로: 다음엔 안 봐줘!

남정: 치료까지 해 줬는데, 진짜 너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