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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5 · 무너진 펫샵과 숲의 물길

5화. 뼈아픈 패배

1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펫샵이 아직 멀쩡했을 때, 늑구는 밥그릇이 놓이는 소리부터 살폈다. 꼬마가 늑구 앞의 밥그릇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면 뾰롱이는 되찾으러 갈 길을 막았고, 세로도 그 앞에 버티고 섰다. 늑구는 이번에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네 발을 바닥에 단단히 붙이고 바람을 일으켰다. 가느다란 바람이 세로를 향해 뻗었지만, 갈기 끝만 살짝 흔들릴 뿐이었다. 세로는 발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늑구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세로그 정도 바람으로 뭘 어쩌려고?

루루늑구 건 돌려줘.

루루가 나서면 이번에는 루루가 모아 둔 과일이 바닥에 굴러갔다. 꼬마는 그릇을 앞발로 눌렀고, 뾰롱이는 두 친구가 주우려는 쪽으로 슬쩍 발을 옮겼다.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니어서 늑구는 루루의 팔을 조용히 잡았다.

늑구루루, 그냥 가자.

둘은 진열장 뒤 좁은 틈에 나란히 앉았다. 루루가 남겨 둔 먹이를 반으로 나누자 늑구도 자기 몫을 조금 떼어 돌려주었다. 누가 먼저 다가오는 발소리가 나면 한쪽이 다른 쪽을 깨웠다.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는 일이 둘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방법이 됐다.

세로: 그 정도 바람으로 뭘 어쩌려고?

루루: 늑구 건 돌려줘.

2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어둠이 펫샵을 덮친 밤, 루루는 천장에서 떨어진 나무 조각에 잠을 깼다. 창문 너머가 검은 연기로 막히고 선반이 기울었다. 루루가 가장 먼저 찾은 건 출구가 아니라 늑구였다. 구석에서 웅크린 친구에게 달려가 어깨를 흔들었다.

루루늑구, 일어나. 나랑 나가자.

늑구너는? 너도 같이 가는 거지?

루루는 고개를 끄덕인 뒤 열린 약장으로 뛰어갔다. 다치더라도 둘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했다. 생명수 병들을 가방에 옮겨 담고, 선반 끝에 남은 마지막 병까지 챙겼다. 늑구가 무너진 문틈을 벌리는 동안 루루는 가방끈을 몸에 걸쳤다. 다른 펫들을 깨우러 돌아가지는 않았다.

루루: 늑구, 일어나. 나랑 나가자.

늑구: 너는? 너도 같이 가는 거지?

3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뒤늦게 깨어난 꼬마와 뾰롱이, 세로도 무너지는 펫샵에서 함께 뛰쳐나왔다. 뾰롱이가 먼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고 꼬마가 바로 뒤를 따랐다. 세로도 두 친구를 놓치지 않으려고 젖은 나무판을 뛰어넘었다.

뾰롱이빨리, 계속 달려!

뒤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꼬마와 뾰롱이는 더 빠르게 달렸다. 세로도 계속 따라오는 줄 알았기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았다. 세로의 발굽 앞에 쓰러진 널빤지가 걸렸고, 잠깐 멈칫한 사이 먼지가 둘의 등을 가렸다.

세로잠깐, 나도 같이 가!

목소리는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에 묻혔다. 꼬마와 뾰롱이가 골목 끝에서 겨우 숨을 돌렸을 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로 떨어진 줄도 모르고 달리는 사이 세로를 놓친 것이었다. 세로 역시 먼지를 벗어나고서야 두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뾰롱이: 빨리, 계속 달려!

세로: 잠깐, 나도 같이 가!

4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며칠 뒤, 준호는 숲 가장자리의 물길에서 작은 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무너진 펫샵을 거쳐 탈출한 펫들을 찾느라 며칠째였다. 쉬어 갈 때마다 펫볼에서 모아를 꺼내 상태를 살폈지만,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먼저 떠난 민정 일행과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바위 뒤에서 루루가 나타났다. 가방 틈으로 비치는 푸른 병을 알아본 준호가 걸음을 멈췄다. 루비와 찌루도 그제야 희망이 생긴 얼굴로 서로를 봤다. 그러나 준호가 한 걸음 다가가자 루루는 늑구를 제 뒤로 밀고 가방을 끌어안았다.

준호친구가 아파. 생명수 한 병만 나눠 줄래?

루루안 돼. 우리한테도 필요해.

준호는 내밀었던 손을 더 뻗지 않았다. 다친 친구가 기다린다고 설명하는 동안에도 루루의 손은 가방끈에서 풀리지 않았다. 늑구 역시 루비와 찌루를 번갈아 살피며 루루 곁을 떠나지 않았다.

준호: 친구가 아파. 생명수 한 병만 나눠 줄래?

루루: 안 돼. 우리한테도 필요해.

5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는 잠시 생각하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열매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열매였지만, 은빛 껍질은 나뭇잎 사이의 햇빛을 받아 또렷하게 반짝였다. 그 빛을 본 늑구가 루루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준호이 은 속성 열매랑 바꾸면 어때?

늑구는 열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람으로 맞서 보았다가 비웃음만 샀던 날들이 떠올랐다. 먹이를 빼앗길 때마다 루루 뒤로 숨는 것도, 루루까지 곤란해지는 것도 지겨웠다. 은 속성을 얻으면 이번에는 자신이 친구 앞을 막아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늑구루루, 바꾸자. 나도 쎄지고 싶어.

루루…정말 그걸 원해?

늑구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는 친구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서야 가방을 열었다. 생명수 한 병을 꺼내 준호 쪽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준호: 이 은 속성 열매랑 바꾸면 어때?

늑구: 루루, 바꾸자. 나도 쎄지고 싶어.

루루: …정말 그걸 원해?

6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의 손끝이 병에 닿기 직전, 옆 수풀에서 발굽 소리가 터졌다. 세로가 둘 사이를 가로질러 병목에 달린 가죽 고리를 낚아챘다. 루루가 빈손을 움켜쥐는 사이 세로는 모래 언덕 위에 올라섰다. 병을 발굽 옆에 내려놓고,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그 앞을 막았다.

준호그거 돌려줘! 아픈 친구한테 줄 거야!

세로이 귀한걸? 내가 가질래.

찌루도 옆에 다가가 한 병만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루비는 병을 밟지 말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럴수록 세로는 병을 제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루루와 늑구에게는 너무 익숙한 모습이었다. 늑구의 귀가 납작하게 내려갔다.

루비는 세로와 병을 번갈아 보았다. 가까스로 모아를 깨울 수 있게 됐는데, 세로는 부탁을 들어 볼 생각조차 없었다. 루비가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준호가 이름을 불렀지만, 귀 끝에서는 이미 불꽃이 솟고 있었다.

준호: 그거 돌려줘! 아픈 친구한테 줄 거야!

세로: 이 귀한걸? 내가 가질래.

7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루비가 쏜 불꽃이 세로를 향해 곧게 뻗었다. 세로는 피하는 대신 앞발굽을 굴렀다. 들려 올라온 모래가 불길을 삼키더니, 힘을 잃은 불씨들이 발굽 앞에 떨어졌다. 세로의 몸에는 공격이 닿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루비왜… 아무렇지도 않아?

세로그걸로 날 이기겠다고?

루비는 더 힘을 모아 다시 공격했다. 그러나 불이 세질수록 세로는 더 두꺼운 모래를 밀어 올렸다. 대지의 힘 앞에서 불꽃은 번번이 흩어졌다. 세로가 뒷발로 모래를 걷어차자 루비는 얼굴을 돌릴 틈도 없이 맞고 뒤로 밀렸다.

눈과 입에 들어온 모래를 털어내며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앞발이 꺾였다. 루비는 모래밭에 쓰러진 채 거칠게 숨을 골랐다. 태오처럼 쎄지고 싶다고 말하던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병까지 절반도 다가가지 못했는데,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루비: 왜… 아무렇지도 않아?

세로: 그걸로 날 이기겠다고?

8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루비가 일어나지 못하자 찌루가 그 앞에 뛰어들었다. 조금 전까지 병을 돌려 달라고 부탁하던 목소리가 날카롭게 떨렸다. 쓰러진 루비가 더 맞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찌루루비 괴롭히지 마!

가시 끝에서 모인 전기가 모래밭을 갈랐다. 세로의 발치까지 닿은 빛이 한순간 번쩍였지만, 세로가 끌어올린 흙더미 속으로 퍼지며 사라졌다. 번개 역시 대지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찌루는 형이 보여 준 거대한 전기를 떠올리며 있는 힘을 다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찌루: 루비 괴롭히지 마!

9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전기가 잦아드는 순간, 세로가 모래를 밀어붙였다. 찌루는 몸을 웅크려 버티려 했지만 발밑까지 파고든 모래에 중심을 잃었다. 그대로 뒤로 구른 찌루가 루비 옆에 떨어졌다. 가시 사이에 남아 있던 작은 불꽃도 몇 번 깜빡이다 사그라졌다.

루비가 떨리는 앞발을 뻗었지만 찌루를 일으킬 힘은 없었다. 찌루도 바닥을 짚어 보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쓰러졌다. 준호가 둘을 데려오려고 달려들자 세로는 또 모래를 일으켜 길을 막았다.

루비찌루… 괜찮아?

찌루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기침부터 했다. 둘은 바로 곁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모래 너머의 세로는 여전히 멀쩡했다.

루비: 찌루… 괜찮아?

10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는 세로가 두 펫을 내려다보는 사이, 바위 뒤의 루루에게 몸을 낮춰 다가갔다. 가방에는 생명수가 더 남아 있었다. 준호는 은빛 열매를 꺼내 소리 없이 내밀었다. 루루도 이제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병 하나를 건네받은 준호가 열매를 놓자, 루루는 곧바로 늑구의 앞발에 그것을 쥐여 주었다.

준호다른 병 하나만. 아까 약속대로 바꾸자.

준호는 바위 그늘에 재킷을 깔고 작은 펫볼에서 모아를 꺼냈다. 손이 떨려 마개가 잘 잡히지 않았다. 간신히 병을 연 뒤 모아의 머리를 받쳐 조금씩 생명수를 먹였다. 한꺼번에 붓지 않고 삼키는 걸 확인하며 기다리는 동안, 바위 너머에서 루비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준호모아, 제발… 눈 좀 떠 봐.

모아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흐릿하던 눈이 준호를 찾고, 곧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모래밭에 엎드린 루비와 찌루를 본 순간 모아가 몸을 일으켰다. 준호의 손을 짚고 버틴 뒤, 이번에는 스스로 네 발을 땅에 붙였다.

준호: 모아, 제발… 눈 좀 떠 봐.

11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세로가 다시 발굽을 들었을 때, 모아가 바위 뒤에서 뛰어나왔다. 축 늘어져 있던 물 꼬리가 빛을 되찾고, 앞발 사이로 빠르게 물이 모였다. 세로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굵은 물대포가 눈앞에 와 있었다.

모아내 친구들한테서 떨어져!

모래벽이 솟았지만 이번에는 버티지 못했다. 물이 모래 틈을 파고들어 벽을 무너뜨렸고, 남은 힘이 그대로 세로를 덮쳤다. 불과 번개를 막아 냈던 세로가 젖은 바닥을 미끄러져 힘없이 쓰러졌다. 훔친 생명수 병은 옆으로 굴러갔다.

준호는 그 틈에 루비와 찌루를 끌어안고 안전한 쪽으로 옮겼다. 루비는 모아가 서 있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렇게 깨우려 애썼던 친구가 이제 자신들을 지키고 있었다. 기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에서는 거친 숨만 새어 나왔다.

세로가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미끄러졌다. 자신을 밀어붙이는 물의 힘을 더 받아 낼 수 없다는 걸 이번에는 세로도 알았다. 그때 바위 옆의 늑구가 품고 있는 은빛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모아: 내 친구들한테서 떨어져!

12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세로는 모아에게 덤비는 대신 늑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생명수를 지키지 못했어도 열매까지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늑구는 세로의 시선이 자기 앞발에 꽂히자 열매를 입에 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싸워서 이기는 일은 어려워도 도망치는 일만큼은 익숙했다. 발밑에 바람을 모으자 젖은 돌도 뿌리도 순식간에 뒤로 밀렸다. 세로와 거리가 벌어지자 늑구는 잠깐 고개를 돌려 웃었다.

늑구이것까지 뺏길 줄 알아?

그 짧은 틈에 세로의 발굽이 바닥을 긁었다. 늑구 앞의 모래가 옆으로 밀려나며 움푹한 구덩이가 생겼다. 앞을 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늑구의 발이 턱에 걸렸고, 몸을 추스르려 입을 벌리는 순간 은빛 열매가 튀어나갔다.

열매는 비탈을 굴러 물가로 떨어졌다. 늑구가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맑은 물 아래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열매를 향해 움직였다.

늑구: 이것까지 뺏길 줄 알아?

13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작은 파란 상어가 물 위로 코를 내밀었다. 낯선 열매를 한 번 툭 건드리더니, 늑구가 소리치기도 전에 덥석 물었다. 은빛 껍질이 이빨 사이에서 갈라지고 반짝임이 물속으로 번졌다.

늑구안 돼! 그거 내 거야!

상어는 무슨 일인지 모른 채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푸른 몸빛은 그대로였지만 가슴과 몸 옆에 매끈한 은빛 장식이 생겨났다. 햇빛을 받은 은이 물결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은 속성을 얻은 작은 상어, 부캉이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가의 소란을 바라봤다.

늑구는 빈 입을 벌린 채 멈췄다. 루루가 지켜 준 생명수와 바꾼 열매였다. 이제는 자신도 친구를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겨우 한 번 뒤를 돌아본 사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부캉이를 탓할 말을 찾기도 전에 뒤에서 모래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늑구: 안 돼! 그거 내 거야!

14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은빛 열매가 상어의 입속으로 사라지자 세로의 시선이 물가를 떠났다. 늑구를 향해 달려드는 대신, 친구를 일으켜 주려고 몸을 숙인 루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루루가 옆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생명수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세로는 가방끈을 물고 세게 잡아당겼다. 루루가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끈은 손끝을 스치고 빠져나갔다. 세로는 남은 생명수가 전부 든 가방을 끌어안듯 몸 옆에 걸고 숲 쪽으로 달렸다.

루루생명수 돌려줘!

모아가 곧바로 두 앞발을 모았다. 물길에서 끌어올린 물이 둥글게 뭉치며 세로를 겨눴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달아나는 등을 끝까지 바라봤다. 세로는 생명수 가방을 몸 옆에 단단히 걸친 채 달리면서 외쳤다.

세로뒤돌아보게 만들기 스킬!

세로의 발굽 끝에서 번진 모래빛 기운이 모아를 스쳤다. 물대포를 내보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아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세로가 저쪽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개와 몸이 제멋대로 뒤를 향했다. 상대를 강제로 돌아보게 하는 세로의 기술이 발동한 것이었다. 앞발에 모인 물은 방향을 잃고 바닥으로 쏟아졌다.

모아어? 왜 뒤를 보고 있지?!

모아가 다시 몸을 돌렸을 때는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 멀어졌다. 루루는 빈손으로 숲 입구에 멈춰 섰고, 늑구는 그 뒤에서 한 발도 더 나가지 못했다. 열매에 이어 남은 생명수까지 세로에게 빼앗긴 뒤였다.

루루: 생명수 돌려줘!

세로: 뒤돌아보게 만들기 스킬!

모아: 어? 왜 뒤를 보고 있지?!

15번째 장면 · 한글 말풍선

준호는 루비와 찌루를 바위 곁에 앉혀 놓고 루루에게 다가갔다. 가방을 빼앗긴 손이 아직도 조금 오므라져 있었다. 모아도 고개를 숙인 채 따라왔지만, 놓친 세로를 다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준호생명수 나눠 줘서 고마워. 덕분에 모아가 깨어났어.

루루는 모아를 잠깐 바라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두 친구가 빈손으로 떠날 생각을 하자 쉽게 말을 끝내지 못했다. 망설이다가 두 친구와 눈높이를 맞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호우리랑 같이 갈래?

늑구가 루루를 보았다. 루루는 준호 옆에 모인 펫들을 천천히 살폈다. 생명수를 먹고 일어난 모아가 나쁜 친구가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래도 여러 펫과 한곳에서 지내자는 말 앞에서는 펫샵의 좁은 통로와 빼앗기던 밥그릇이 먼저 떠올랐다.

루루미안해. 아직은 다른 펫들이랑 같이 못 가겠어.

준호는 더 권하지 않았다. 루루는 늑구가 다친 발을 디디는 걸 기다려 주었다. 늑구가 몸을 가까이 붙이자 둘은 나란히 숲으로 들어갔다. 나뭇잎이 두 친구의 모습을 가렸다가, 마지막으로 흔들리고 멈췄다.

루비는 두 친구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다 제 앞발로 시선을 내렸다. 귀 끝의 불꽃은 살아 있었지만, 세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옆에 앉은 찌루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루비가 먼저 찌루 쪽으로 몸을 조금 붙였다. 찌루는 피하지 않았다. 준호는 둘의 등에 묻은 모래를 털어 주고, 깨어난 모아까지 곁에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가방을 다시 멨다.

준호: 우리랑 같이 갈래?

루루: 미안해. 아직은 다른 펫들이랑 같이 못 가겠어.